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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하위감각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6)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특수교육

하위감각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6)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12. 25. 23:22

하위감각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6)

 

강사: Susan Howard

 


슬픈 아이/우울한 아이: 운동감각과 균형감각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

어제 민속촌에 다녀왔다. 공간이 완벽한 유치원이었다. 의미 있는 행동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다. 그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조상대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오늘과 내일이 똑같이...
TV나 과학기술 없이 행위들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조용한 시골에서 손으로 일하는 그곳에서 발도르프 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상급으로 갈수록 아이들은 시골에서 미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교육자로서 우리의 과제는 아이들이 과거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창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살 미래는 더 많은 기술들이 있는 세상일 테니까.
그런데 undernature(자연 밑의 물질)의 힘과 관련된 기술들, 즉 원자력, 전자기 등. 이런 것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더 고양시켜야 한다.

오늘의 아이들은 다른가? 더 어려워졌나? 요즘 아이들은 옛날 아이들과 달라졌나?
인간으로서 발달 과제는 같은데 아이들은 이것들을 울퉁불퉁하게 만난다. 그래서 아이도 부모도 어렵다. 슈타이너는 아이들이 점점 걱정, 불안을 안고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자연적인 힘, 생명의 힘들이 망가졌고 그래서 우리의 생활 자체가 어려워졌다. 첫날 걱정 불안 무서움이 있는 아이, 어제는 계속 움직이는(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에 대해 살폈고, 오늘은 슬픈 아이를 보겠다.

움직임을 통해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과 기쁨을 느낀다. 운동감각은 내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감각이다. 다른 것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근육이 함께 움직임을 감지한다. 어깨를 다쳤을 때 문제가 여기저기에 다 있었다. 인간은 근육에서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움직일 때 그 움직임의 반대 움직임이 일어난다고 슈타이너가 말했다. 커피컵으로 다가가는 힘만이 아니라, 커피컵을 다가오도록 끄는 힘이 내 안에 있다. 신생아는 이것이 굉장히 힘들다. 특별한 과정들을 통해서 움직임을 체득한다. 움직임의 기쁨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는 무용수의 사진. 이 사진은 완전히 스스로 움직임을 통제한 모습이다.

아이들은 완전히 열린 눈동자라고 했다. 요즘의 아이들은 자기가 다룰 수 없는 물체 속에 눈동자가 갇혀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
아이들은 바깥의 모든 움직임을 감지하고 받아들이고나서 자기가 한다. 특히 아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움직임은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 서서 걷는 사람이 아이 주변에 없으면 걷기를 배우지 못한다.
생명감각의 어려움이 있는 아이는 계속 뛰어다니고 움직인다. 이 아이는 외부의 움직임을 굉장히 빨리 캐치하고 모방을 통해 움직이는 거다.
고유운동감각의 문제는 세상이 너무 빨라 내가 어떻게 들어가서 모방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이런 아이들 어떤가?
- 자꾸 넘어지고 떨어뜨리고, 소근육 발달이 안 되고...
- 유치원 여자아이, 큰 공을 던지면 그냥 맞는다. 움직임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 느린 거다.
- 리듬적으로 한 활동에서 다른 활동으로 못 넘어가는 아이, 주변을 모두 잊는다. 다들 산책갔어. 그래도 나는 놀 거야. 애들은 다 이쪽으로 놀고 있는데 혼자 다른 방향으로 논다. 움직임의 방향을 캐치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왼쪽으로 돈다. 한 아이가 가운데로 온다. 그러다가 밖에서 구경한다. 물에 젖은 주머니처럼.

축제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논다. 난 춤 못춰요. 춤추는 거 보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외롭고 슬픈 일이다. 세상은 다들 즐겁게 어울려 춤추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고 느낀다.
이 운동감각을 통해서 기쁨을 느끼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고 느낀다. 내 몸 안에서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야. 파티에서 춤 못 추고, 춤 신청 못 받는 사람을 벽에 그려진 꽃이라 얘기한다. 자유롭지 않다. 자기 몸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다.
균형감각과 운동감각을 섞어서 얘기하게 되는데, 이 둘은 몸 안에서 Autonomy(자율성)와 관련된다. 나는 독립되어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이 필요치 않아. 가는 것뿐 아니라 어디로 가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독립적인 것이다. 운동감각과 균형감각은 항상 조화롭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움직일 수 있는 자유, 나는 요만큼 움직일 거야. 적정하게 움직일 때 기쁨이 있고.
균형감각은 자아가 내 몸속에서 편안히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차분히, 고요하게 있을 수 있어. 평화로워. 난 움직일 수 있다. 자유로운 움직임 사진과 명상 부처상 사진, 이 둘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움직임을 통해 하늘과 땅을 조화롭게 한다.

 

 



Now I walk in beauty
beauty is before me
beauty is behind me
above and below me




 



아름다움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앞뒤, 위아래, 좌우, 과거와 미래.
아이들은 그걸(움직임과 균형) 배우고 있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잘 못한다.
말과 소리는 연결되어 있다. 말 뒤에 숨은 의미를...
달팽이관 문제. 균형이 깨지면 멀미한다. 자아를 잃어버리게 된다. 어지럽다. 기절을 잘 한다. 자아가 몸속에 깃들어 의식을 유지할 수 없어서 나가버리는 거다. 이 상태가 멀미다.
균형감각은 다른 사람의 말 뒤에 숨은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과 관련된다.
회사에 출근해서 완전히 자기 안에 갇혀서 그냥 일만 하는 사람. 다른 것들에 관심이 없다. 자유롭게 자기를 펼칠 수가 없다.
밤에 아이들을 떠올릴 때 말썽쟁이들은 잘 떠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안에 갇힌 아이들은 마지막에 떠오른다. 정말 그만큼 적극적으로 떠올려야 한다. 정말로 관심이 많이 필요하다.
이런 아이가 어른이 되면 방향감(orientation)에 문제가 생긴다.
가다가 옆에 뭐가 있는지 쿵쿵 부딪히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신체적 차원뿐 아니라 영혼과 정신의 차원에서도 방향을 잃을 수 있다. 생각 속에서 혼란스럽다. 너무나 선택이 많다. 내 삶을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삶의 방향성과 목표가 없고, 삶의 Autonomy가 없다. 길을 못 찾은 아이와 같다.

어렸을 때 길을 잘 찾도록 도우면 어른이 되었을 때 자기 삶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길 잃기 놀이/길 찾기 놀이
바닥에 잠재된 상처 있는 아이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세계에 참여할 수 없는 느낌, 따돌림 당한다는 느낌, 스스로 왕따가 되는 것, 내가 세상 속으로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아니면 세상이 나한테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다.
가끔 이 사람들이 생각이 느리다고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유치원 교사 회의할 때 목소리 크고 이런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한다. 회의가 길어지니까 의장이 이제 여기까지 하고 다음 안건으로 갑시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마디도 안했던 사람이 아주 느린 목소리로 “제 생각엔 ~ ~ ”

현대 사회는 빠른 사람에 대해 좋은 편견을, 느린 사람에 대해 나쁜 편견을 갖고 있다. 효율적으로 빨리 일해야 하니까. 그래서 이제는 미리 얘기한다. “또 다른 좋은 생각 있나요?” 요청받고 격려받길 원한다. 이런 동료가 있나? 또는 본인이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강의 끝나고 커피 마시고 농담할 때 못 들어가는 사람. 아, 그때 이 농담할 걸...하고 나중에 혼자 생각한다. 이럴 때 못 낀다. 유치원 아이들도 삶의 과정에 못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헤닝 쾰러; 이런 아이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적으로 경험할 능력이 없다.
근육, 밖의 움직임을 통해 – 참여하고 – 내 안의(내면의) 움직임으로 경험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방황한다. 돌아다니면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상태다. 잠을 자다가 쇼크에 빠지기도 한다. 유치원이 너무 와일드하게 움직이면 패닉에 빠진다. 소리를 지를 수 있다. 그 모든 일이 이 아이에겐 너무 과한 거다.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새처럼 스스로 느낀다. 날 수 없다고 스스로 느낀다. 이 아이들을 바라볼 때 교사에게는 자비심과 인내심, 공감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다 될 때 자유를 얻는다.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질문> 비만이 운동감각 손상의 원인인가요, 결과인가요? 둘 다다.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내 움직임 속에 있는 것을 아이들한테서 찾아봐라.
내가 의미있게 움직이는가?
목적의식이 뚜렷한가?
내 의식이 내 움직임에 손끝까지 닿아 있나?
목적과 의도가 행동 속에 들어간 움직임을 주변 사람이 할 때 아이에게 의미 있다. 치료오이리트미스트, 휠체어에 앉은 아이 앞에서 움직인다. 그걸 보면서 내적으로 보면서 동참할 수 있다. 의도 있는 움직임 속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음악과 오이리트미, 언어가 중요하다.
이 아이에게 내가 어떻게 말을 하는가, 그리고 이 아이 주변에서 내가 어떻게 말을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 아이들은 잘 형성된 것을 원한다. 너무 시끄럽고 빠른 것은 고통스럽다. 생각, 느낌, 움직임, 유치원의 리듬생활, 활동, 활동의 순서 등등.
잘 형성된 움직임과 말. 교사가 정확하게, 침착하고 차분하게 천천히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말과 움직임을 선생님이 보여주면 이런 아이에게 굉장히 강력한 힘을 줄 수 있다.

유치원은 정신과 영혼이 몸속에 잘 깃들도록 돕는 것, 육화를 돕는 것이 중요하며 교사의 과제이다. 빵굽기, 말하기, 리듬생활, 오이리트미, 긴 산책.
몸에 갇힌 아이들, 몸에서 마비된 것 같은, 몸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아이들. 몸이 안 따라주는 것. 오이리트미, 말하기. 순수 예술적 형태를 어떻게 밑으로 가져와서 작업할 수 있을까?
곡식 가는 것 보여주고 빵 반죽하는 것, 의미 있고 목적의식 있는 리드미컬한 움직임. 그 과정을 통해서 결과로 간다. 어, 빵이 됐네! 그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게.
아마도 처음엔 보기만 하다가, 너를 위해서 내가 희생해서가 아니라, 너 대신 내가 할게. 그런 나의 태도로 아이가 내적으로 함께 참여하게 할 수 있다. 아이를 대신해서 밀랍을 만져서 나비를 만드는 과정을 본다.

겁 많은 아이는 교사가 어떤 퀄리티로 물건을 만지는가가 중요했다.
망가뜨리는 아이는 참을성, 내적 고요함, 느림 연습이 중요했다.
슬픈 아이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연습한다.
세상에 대한 사랑을 나의 움직임으로 보여줄게라는 마음으로 의미 있는 움직임을 교사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치원 선생님을, 세상에 대한 사랑을 가진 유치원 선생님들을 밖에서 볼 때는 not so loving. 사랑을 가지고는 있는데 그걸 보여주지 못할 때.
심각한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묻는다. “엄마, 화났어?”
유치원 교사와의 미팅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다 있는데 그 유치원에 빠진 건 기쁨이었다. 얼굴과 움직임에서 그 일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걸 느낄 수 없었다. 진짜로 좋아야 밖에서도 볼 수 있다.

공립학교 다니는 조카가 있어서 물었다. “ 너네 선생님 어때?”
조카가 “겉으로는 웃어.”
이 교사가 이 일을 좋아하는가? 아이는 다른 선생님을 좋아하는가?
이것이 달라져야 할 점이다. 그래 좋아, 세상으로 오겠어.
-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길로 길게 오래 산책가라. 그러면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예) 산책 길에 집짓는 곳을 지난다면 뭔가 조금씩 바뀐다. 천천히 리듬 있게 걷는 것. 이 과정에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담장 위를 걷기도 하고... 즐겁게 놀이처럼, 예술적으로.

- 대칭적 움직임, 균형 잡힌 움직임을 놀이처럼 하면 내적으로 tolerance(관용, 용인)와 사랑을 줄 수 있다.
이런 아이들과 작업할 때 결과를 빨리 보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동행한다.
탄생 이전의 아이는 천사와의 관계에서 아주 오랜 과정을 갖는다. 그 천사들은 정말 무한인내심을 갖고 있다. 참을성이 극도로 강화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들을 치유하고 싶어서 정말로 조급하다. 치유의 결과를 보고 싶은 조급함을 버리고 무한 인내심의 사랑으로 그냥 동행하는 것이 치유의 과정이다.

내일은 부모님과 함께 일하기 그리고 아이관찰에 대해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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