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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오후 분과토론 : 사후세계 및 인지학 은행에 대해 강의>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3. 13. 13:17

<오후 분과토론 : 사후세계 및 인지학 은행에 대해 강의>

 

이번이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전 시간 중 계획하기로, 제가(비허르트 선생님) 먼저 사후세계에 대해 짧게 이야기 한 후 나나 괴벨 선생님께서 인지학 은행 또는 윤리적 은행이라는 인지학 내 경제관련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그 뒤 여러분께서 적어주신 수많은 다른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계획은 그렇게 잡았었는데 괜찮으신가요?

 

질문한 사람이 여기 계신 것처럼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서양 전통에서는, 아마도 한국에서도 그럴 것 같은데, 잠은 ‘죽음의 동생’ 즉, ‘작은 죽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국에서도 그러나요? 앞서 인간의 4구성체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자아, 영혼체 또는 아스트랄체, 에테르체 또는 생명력, 물질육체. 이 네 구성체는 언제나 상호 연결되어 있고, 관통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잠이 들면 자아와 아스트랄체는 에테르체와 물질육체를 놔두고 떠나갑니다. 분리가 됩니다. 자아와 아스트랄체는 정신세계로 가고, 이 두 가지를 남겨놓고 갑니다. 그러니까 영혼과 자아는 밤에 정신세계로 가고, 물질육체와 생명체는 침대 위에 있습니다. 즉 영혼과 에테르체의 관계는 유동적입니다. 첫날 강의에서 제가 우리는 깨어있으면서 잠자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호등의 예를 들어 설명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는 깨어있는 상태입니다. 반면 긴장을 풀고 쉬는 상태, 뭔가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상태는 거의 잠든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결합(잠과 깸의 관계)이 역동적이고 유연할수록 인간은 건강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이 상태가 똑같이 반복되는데 차원은 달라집니다. 죽으면 물질육체가 생명체, 영혼, 자아로부터 분리되고, 혼자 지구에 남습니다. 이것이 죽음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생명체와 물질육체는 평생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이 분리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수많은 종교 전통에서(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3일이 지난 후에야 시신을 땅에 묻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3일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여러분은 살아있는 사고로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개념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상상을 해보세요. 우리가 죽으면 에테르체와 영혼, 자아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공간의 세계 속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테르체(생명력)는 물질에 속하는 특성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어 그 측면을 거울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후 3일 동안 우리의 사고, 의식은 이 에테르의 힘이 만들어낸 거울상을 봅니다. 그 거울을 통해 3일 동안 지금껏 살아왔던 삶을, 거꾸로 (죽음부터 탄생 순서로), 아주 커다란 이미지로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3일이 지나면 에테르체는 인간에게서 나와 세계 에테르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영혼과 자아는 아직 결합되어 있지만, 에테르체와 물질육체는 없는 상태입니다. 이 때 부터 아주 놀라운 상황, 즉 큰 돌아보기가 진행됩니다. 그 돌아보기는 살아있는 동안 잠을 자며 보냈던 시간만큼 지속됩니다. 일반적으로는 평생의 1/3에 해당합니다. 이 큰 돌아보기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 돌아보기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내 관점에서 내 삶을 돌아보는 게 아니라, 주변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주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일했는가를 주변의 관점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어떤 아이한테 아주 다정하게 대했다면, 그 아이가 느꼈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변에 했던 그것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족이나 배우자를 사랑하셨다면, 죽어서 돌아보기를 할 때 당신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느낍니다. 만약 아이를 때렸다면, 그의 고통을 제 것으로 느낍니다. 누군가를 미워했다면 그 사람의 좌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에 존재하는 굉장히 큰 인과 법칙입니다. 내가 했던 행위는 어디로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동물을 학대했다면 그 동물이 느낀 고통을 제가 느낍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이것을 옛날에는 사후에 삶을 정화하는 기간이라고 했고, 라틴어로는 ‘연옥’이라고 부릅니다. 이 과정이 다 끝나고 나면 아스트랄체는 정신세계 속 아스트랄적인 힘의 영역 속으로 사라집니다. 자아는 홀로 이 돌아보기 과정의 결과물로 얻은 정수를 갖고 정신세계로의 여정을 계속합니다. 이 기나긴 여정에서 자아는 영혼의 정수를 품고 행성들의 길을 따라 갑니다. 그리고 높은 정신적인 존재가 있는 곳에서 나는 그들과 일종의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잘했는지 말해주십니다. 내가 이 삶에서 어떤 과제에 대해서는 다 끝냈다고, 그래서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말해줄 뿐 아니라, 어떤 과제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부족하다고, 더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그 과제는 다음 삶에서 내가 해결해야 될 일입니다.

이렇게 정신세계로 가서 나의 영혼의 정수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음 육화의 내 물질적인 기반을 준비합니다. 다음 육화를 내가 어떤 몸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이 거대한 여정의 한 가운데 정신적 존재의 도움을 받아 지상을 돌아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해, 발달을 완수하기 위해 지상으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린 가끔 '왜 어떤 재능을 타고 나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재능들은 죽음과 새로운 탄생 사이에 행성들의 영역을 만난 과정의 결과로서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지상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을 하면 그러한 재능을 키워줄 수 있는 어떤 혈통, 또는 유전적인 힘을 찾게 됩니다.

우리가 지상에 올 때는 약점도 갖고 옵니다. 별로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던가, 성격이 좀 나쁘다거나, 건강이 안 좋거나 하는 것들은 우리가 작업해야 하는, 내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에게 이런 과제를 준 것입니다. 사후 영혼의 여정에 대한, 새로운 육화까지 가는 아주 짧은 스케치였습니다.

 

이런 새로운 생각을 접하셨고 들으셨으니까 낯설지는 않게 되셨습니다. 이제 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고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믿으라는 게 아니라 이게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앎을 갖게 되면서, 이런 앎과 친숙해지면서 우리는 삶에 대한 책임감이 더 예리해질 수 있습니다.

 

질문 : (김훈태 선생님) 불교에서는 “과제를 다 수행해서 윤회를 끊는다”라고 표현합니다. 동양에서는 그래서 부처가 되는 것이 평생의 과제가 되기도 합니다. 인지학에서는 그런 관점을 부정하는 느낌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답 : 슈타이너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들은 아주 높이 발달했기 때문에, 불교적 이해에 따르면 그들은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윤회를 벗어나지 않고, 세상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자진해서 다시 그 속으로 들어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보살사상)

 

질문 :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해결 못한 것들을 다음 과제로 갖고 열망 같은 것들, 나는 다음 생에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끊임없이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못되고 나중에 다시 태어날 때 그런 열망 같은 것도 자아가 가지고 있다가 다음 육화할 때 그것을 가지고 내려올 수 있는 것인지?

(통역) 이번 육화 때 어떤 열망을 가지고 왔는데, 그걸 못했으면, 그게 다음 육화로 또 연결되는가? 라는 질문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비허르트) 예를 한 번 들어주세요.

(질문자) 피아노를 정말 잘 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그런데 지금은 그걸 할 수 없는데, 또 태어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럼 다음 육화 때 내가 열망하면 그렇게 태어날 수 있는지?

답: 아주 좋은 예입니다. 어떤 일이 내게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낀다면, 그 열망이 내게 아주 강해서, 예를 들어 음악가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삶의 조건이 내가 그걸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그 소망은 죽음과 새로운 탄생 사이의 삶 동안 아주 크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생에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고,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환경을 찾아 태어날 수 있게 됩니다. 오직 그런 열망이 있을 때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미 음악가라면, 절대 다음 생애에 더 나은 음악가로 태어나지는 못합니다.

 

질문 : 자아(self)가 육화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답 : 정신세계를 지나는 여정 중에 내가 지구로 돌아오고 싶은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질문 : 그렇다면 우리가 굉장히 안 좋은 상태, 기아라든지, 태어날 때부터 굉장히 재난적인 그런 상황에서 태어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들이 선택되어서 그렇게 될 수가 있나요? 선택이라는 것이 좀 더 나은 조건으로 선택하는데, 내가 더 안 좋은 조건으로 육화하겠다는 것을 선택을 할 수가 있나요?

답 : 지금 질문에 답변을 드릴 수는 있지만 그러지 않으려 합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그런 뒤 시간이 흘러 그 일반적인 상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일반적인 상을 보도록 합시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길고 긴 여행을 떠나 길을 가는 그 여정 중 어느 날, ‘아,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과 새로운 탄생 사이의) 결심입니다. 좀 일찍 돌아갈 수도, 늦을 수도 있지만, 불현 듯 깨닫는 것입니다. 이제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가야겠구나. 그런 성격의 것을 말한 것입니다.

 

(질문자)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가난이 계속 대물림하고 부가 계속 대물림하는 그런 것들이 계속 태어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문제는 분명히 아닌 것 같아서 그런 측면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통역자) 사회적인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김훈태) 그런 정신적인 부분은 사실은 우리가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우리는 영혼적인 차원도 사실은 잘 모르는 시대에 살잖아요? 그래서 윤회와 같이 정신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가 인간적인 관점에서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사실은 맞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나나 선생님)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가봅시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윤리적 생태적 은행, 또는 인지학 은행은 그 나라의 은행법 안에서 움직여야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은행은 아주 구체적인 목표와 뚜렷한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인들이 생각하는, 펼치고자 하는 모든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저는 실재 어떻게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이상적인 차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실행되는 모습은 각 나라의 은행법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행에 대한 생각은 ‘돈이 무엇인가, 돈은 어떤 특질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제 주머니에 6천원이 있다면 저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몹시 화가 날 것입니다. 커피 한 잔에 6천원은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마실 수는 있습니다. 돈의 특질중의 하나는 ‘구매력’입니다. 모든 사람이 돈을 가지고 구매를 합니다. 아니면 그 6천원을 청계자유학교에 기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돈을 어디에다 쓸 건지에 대한 결정권은 이제 나를 떠났습니다. 나는 학교에다 기부를 했기 때문에 그 결정권은 오로지 학교에 있게 됩니다.

 

구매 - 돈 - 기부

 

구매를 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기부를 할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자유의지가 무슨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 줍니다. 이런 것을 위해서는 은행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현금을 예를 들어 배게 밑에 저금했습니다. 뭔가를 사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하고, 보통은 돈을 모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검정색 멋진 현대 자동차를 사려면 정말 많이 모아야 합니다. 그렇게 멋지고 비싼 현대 자동차를 사고 싶은데 그렇게 많은 돈을 모아놓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죠? 돈을 빌립니다. 친구나 아는 사람에게 빌릴 수도 있고 은행에서 빌릴 수도 있습니다.

그 빌린 돈을 가지고 나는 사는 행위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기부를 해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빌린 돈으로 어떤 사업체를 시작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돈에 부여한 특질은 내가 거기다 부여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돈을 빌려주는 행위가 일종의 사업, 즉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은행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우리는 이자를 물어야 됩니다. 그리고 은행은 그 이자를 통해 수입을 얻습니다. 이 상황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있습니다.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하나는 은행에 돈을 맡길 때 그 돈에 목적, 쓰임새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행에 돈을 저축합니다. 저축하면서 그 사람이 ‘이 돈은 이렇게 쓰여야 돼’라고 그 돈의 쓰임새를 지정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 돈을 저축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쓰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저금을 하면서 이 돈은 반드시 유기농업을 하는 데 쓰여야 하며, 화학비료를 쓰는 농업 분야에는 돈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지정합니다. 또는 우리는 석유 채굴이나 원전 개발이 아니라 태양열 에너지나 풍력 에너지 사업에 돈을 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정말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면서 교육받는 기관에 재정지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축하는 사람들이 은행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은행은 자본뿐만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은행입니다. 저축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목적과 방향을 가진 분야를 윤리적으로 생태적으로 육성하고 키우기 위해 은행에 돈을 줍니다.

 

두 번째 차원은 이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학교를 세우기를 원한다고 합시다. 건물이 필요합니다. 그럼 우리한테 건물 살 돈을 빌려줄 은행을 찾아야 합니다. 이윤을 만들려고 일하는 은행에서는 절대 대출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돌려받을 보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을 빌린다는 것에 대해 아주 좁은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정된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이 요즘입니다.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에 그것을 담보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담보로 맡길 자산을 가지고 돈을 빌리는 학교는 없습니다. 그럴 때 인지학 은행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공동체에 100명의 부모가 있는데, 이들이 이제 내가 학교를 위해 10년 동안 기부를 하겠다고 은행과 약속을 합니다. 그러면 은행은, ‘좋습니다. 이 정도 액수의 돈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런 식으로 갚겠다고 보증을 하셨습니다. 그걸 토대로 돈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이 경우에는 개개인의 사람이 돈을 돌려줄 안전장치입니다. 이 은행은 은행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돈을 벌지 않습니다. 그냥 세금 내고 운영할 수 있는 돈만 나오면 되는 곳입니다. 이 은행들은 우리는 개별의 의도에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스스로 존재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은행에 돈을 빌렸을 때 내는 돈, 우리가 보통 이자라고 말하는 돈은 단지 그 은행에 내는 비용이지 그 이상의 돈을 내진 않습니다. 이제 이런 식의 학교 단위가 아니라 사업체에 대해서는 망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으므로 좀 더 복잡해집니다.

 

인지학 은행의 기본개념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자유 또는 의도, 그가 품은 뜻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 때 그 사람이 받는 이윤은 무엇일까요? 그 돈이 합리적인 쓰이는 것이 바로 그 이윤이 됩니다. 여기서는 돈이 계속 불어나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본 시장에서 흔히 하듯 돈 가지고 장난하지 않습니다. 돈을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인지학은행의 기본 방향입니다.

 

쉬는 시간에 받은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질문 : 인지학은 정말 멋지게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원하시는 깊이만큼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시죠? 그래서 짧은 답변만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인지학적으로 말해주십시오.

답 : 제가 이에 관한 슈타이너의 강연을 처음 읽었을 때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며칠 동안 4구성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왜 서로 끌리는가? 무엇이 인간을 서로 끌리게 하는가? 슈타이너가 말하기를 남자는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자는 반대입니다. 물질육체에 있어서는 여자인데 생명체에 있어서는 남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음양과 + -가 서로 끌리는 것처럼 그 대립 되는 요소가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질문 : 동성애에 대한 질문입니다.

답 : 동성애는 인지학운동 안에서는 터부시되지 않습니다.

질문 : 아이 훈육discipline 에 대한 질문. 특히 어린 아이에 관한.

답 :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교육의 원칙이거나 법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교육자로서의 자세인데 절대로 우리는 훈육 그 자체를 위해서 훈육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생과 교류하면서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훈육이 생겨나는 방향으로 교육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벌을 준다면, 당연히 체벌은 하지 않습니다만, 벌을 준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잘못된 행동과 관계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10학년 아이가 학교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학교에서 절대로 금지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일종의 강의를 준비하게 합니다. 자기 반 아이들한테 30분 동안 담배라는 식물에 대해 조사 발표를 하게합니다. 그는 아주 철저히 수업준비를 해야 합니다. 칠판그림도 그리고 담배 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인간은 그 식물을 가지고 뭘 하는지, 어떻게 말리고, 잎을 발효시키고, 니코틴에 어떤 약리적인 효과가 있는지 또 한편 다른 효과, 마약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지만, 아무튼 니코틴이 가진 그런 쪽의 멋진 효과에 대해 아주 철저하게 객관적인 발표를 준비시킵니다. 이게 어떤 창조적인 일이라는 것 아시겠죠?

아니면 4학년 아이가 아주 멍청한 실수를 했다고 합시다. 아주 어리석은 행위를 했을 때 교사는 다음날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가 뭘 했는지를 직접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리석음 자체가 어떤 이미지로 떠오를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실제로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여러분이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지 즉각 알아차립니다.

한 가지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있어 교사들이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원칙은 절대로 그 아이를 비난하지 않고 그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만 비난합니다.

 

질문 : 꿈에 대한 질문.

답 : 너무 과식을 하거나 할 때 꾸는 꿈인 개꿈으로는 깊게 안 들어가겠습니다. 그런 꿈 말고 다른 종류의 꿈이 있습니다. 깨어나자마자 어 이거 보통 꿈이 아닌데 하고 느껴지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그것을 구별하는 것, 그것이 생각해봐야 할 꿈인지 개꿈인지 알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꿈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다시 인간의 4구성체를 떠올려봅시다. 자아, 영혼(아스트랄체), 에테르체, 물질육체. 슈타이너가 말하기를 우리는 오직 반영reflection이 있을 때만 꿈을 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꿈은 영혼이 에테르체 사이에 짧은 접촉이 있을 때 생깁니다. 하지만 그 접촉은 너무나 짧기 때문에 잠에서 깰 정도는 아닌, 그 짧은 접촉의 순간에 반영이 일어나는 것이 꿈입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 자고 있는 방의 문이 쾅 닫혔습니다. 갑자기 큰 소리가 일어난 거죠. 바로 그 순간, 영혼은 깨어나고 싶어 에테르체를 살짝 건드렸다가 다시 나갑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아주 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꿈속에서는 아주 긴 시간이 흘렀지만 실재에서는 몇 초밖에 지나지 않는 경우를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럴 때 시간의 영역 밖에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종류의 꿈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상의 영역에서 오는 꿈이고, 우리가 의미 있다고 여기며 기억하려는 꿈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질문 : 아스트랄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예로 설명해주세요

답 : 장미 또는 벚나무가 있습니다. 나무는 물질 육체라고 부를 수 있는 물질적 외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원리, 에테르의 원리도 있습니다. 자라고 꽃 피고, 가을이 되면 잎이 물들고, 낙엽이 떨어지고... 이것은 나무가 가진 생명의 순환법칙입니다.

그런데 제가 벚나무에게 다가가서, 지금 활짝 꽃이 피어 있는 그 나무에 다가가 너의 하얀 꽃이 조금 더 분홍색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분홍을 만들어내라고 부탁해도 나무는 대꾸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무에는 아스트랄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게 개 한 마리가 있다고 합시다. 늙은 개가 아니라 젊은 개입니다. 나는 그 개에게 내가 문으로 들어올 때 짖지 않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동물 커뮤니케이터 dog whisperer 가 있습니다. 그들은 개의 아스트랄체에 극히 민감하기 때문에 그들은 개에게 무슨 일이든 시킬 수 있습니다. 개는 아스트랄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는 절대 당신에게 ‘주인님, 저는 그 연습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발 다른 거 해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개에게는 자아가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합니다. 언어란 자아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살을 꼬집거나 의사가 주사를 놓으면 나는 고통을 느낍니다. 나무에게는 그렇게 해도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인간과 고등동물들에게는 아스트랄 체가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낍니다. 어떤 외부의 자극이 내면적인 느낌, 감정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 바로 아스트랄체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했는데 그 자극이 아파, 싫어 등의 반응을 한다는 것이 아스트랄체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 피곤함을 느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아스트랄체가 물질육체와 에테르체를 놔두고 떠나고 싶은 것, 잠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순간에,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아니면 지금, 뭔가 아주 흥미로운 것을 하면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확 잠에서 깹니다. 그 흥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질문 : 정신이 먼저인가요? 물질이 먼저인가요?

답 : 인지학을 이야기할 것도 없이 여러분의 문화에서도 정신이 모든 것의 바탕이라고 말합니다.

 

질문 : 에테르체의 실체에 대해?

답 : 여러분께 에테르체의 실재에 대한 아주 좋은 실험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실험을 바로 이곳 의자 위에서 했는데요, 예를 들어 나무 의자에서 다리를 꼬고 의자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면, 10분 후에 다리가 잠이 들어버립니다. (피가 안 통해 먹먹해진 상태)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 다리가 휘청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다리로 가는 혈류가 막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피와 함께 에테르도 흐릅니다. 에테르체도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한 1-2분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게 됩니다.

저를 치료하시던 치과의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그분은 1차 대전에서 다리를 잃으셨습니다. 다리가 없어도 이를 치료하는 기술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므로 좋은 의사였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면서 그 선생님은 그분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 부분에서 다리가 절단되었는데,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다리 절단 후 10년 동안 다리가 아직 여기 있다고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5년이 지나자 그 의식은 여기로 올라가고, 다시 5년이 지나자 여기로, 그러다 마침내 그 느낌이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의학에서는 환각통이라고 말하는 증상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날씨가 급변할 때는 없어진 다리에 통증을 느끼고, 날씨가 일정할 때는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육체를 절단했다고 에테르체가 갑자기 없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에테르체는 아스트랄체의 돌보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스트랄체의 일부와 에테르체의 일부가 아직 그곳에 남아 있다가 천천히 몸속으로 수축해들어갑니다. 이것도 에테르체의 존재에 대한 증거입니다.

 

질문 : 발도르프 학교에서 인지학은 필수인가

답 : 생명역동 농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달력을 보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음. 하지만 발도르프 교육을 하고자 할 때 교사가 수업 준비하는 태도,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그래야.

 

질문 :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자기개발 훈련은?

답 : 하루를 돌아보는 연습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다른 연습은 ‘지적인 생각 통제하기’입니다. 내가 뭔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내 사고에 고삐를 채울 수 있는가, 내 느낌에, 내 의지활동에 고삐를 채울 수 있는가. 나나 선생님께서 어제 말씀하시길, 우리는 일상의 거의 89%가 외부의 필요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그런 온갖 필요, 의무에 의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멋진 자기 발전의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드시 매일 15분 동안 어떠한 의무에도 끌려 다니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한 15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내가 그 15분 동안 뭘 하고 싶은가를 찾아내려고 하십시오. 의무 또는 삶의 필요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 배우자나 아이들과 상관없는 일, 집안일과도 상관없는 일, 오직 나만을 위한 일. 그 15분을 지켜내기 위해 애를 써야 할 상황이 생긴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집중해주신 여러분의 용기와 끈기에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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