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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 정신과학, 과학의 의미 (3) 본문

인지학

인지학, 정신과학, 과학의 의미 (3)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5. 28. 16:46

 
<철학, 우주론, 종교>라는 책을 보면 슈타이너가 과학과 철학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심령학이나 신비학, 밀교 같은 것들과 정신과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책의 내용을 옮겨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령학, 밀교 같은 것은 현대인이 더 이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 오랜 영적 전통을 바탕으로 초감각적인 세계들에 대한 인식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들을 어설픈 방법으로 제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감각 세계를 관찰하기 위한 전형적인 연구 방법들로는 결코 초감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피상적인 형태로 통상적인 과학의 방법론을 흉내낸다. 그리고 신비주의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단순히 낡은 방식으로 영혼 체험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불분명한, 때로는 환상이나 공상 중에 이루어지는 자기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9)
 
자연과학 안에서도 화학의 연구 방법으로 생물학의 대상들을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물리학의 연구 방법으로 화학적 현상을 다루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이 처음에는 물리학과 천문학으로 시작되어 연금술이 화학으로 통합되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생물학이 과학으로 인정받습니다. 생물학에 영향을 받은 과학 분야가 바로 사회과학입니다.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사회과학에서 많이 쓰는데, 이는 생물학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물론 한 세포의 시스템과 인간 사회의 시스템은 동일할 수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는 세포 수준보다 더 복잡하고 특이한 현상이 많기 때문입니다.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만나 물(H2O) 분자가 되면 원자 단계에서 없던 새로운 속성과 힘이 생기는데, 이를 발현적 속성 또는 발현적 힘이라고 부릅니다. 초감각의 세계는 감각 세계에 없던 발현적 힘이 나타나므로 통상의 과학적 연구 방법으로는 탐구가 불가능합니다.  
 
슈타이너가 설명하는 정신과학은 현대 자연과학 연구의 관점을 온전히 긍정하고 그 가운데 올바른 것을 인정합니다. "이 방식에서는 단순히 영혼적 통찰을 위해 엄격하게 정해진 훈련을 행함으로써 초감각적 세계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교한 결과를 얻으려"(9-10) 합니다. 정신의 탐구자는 정신세계에 대한 관찰과 실험의 도구로써 자신의 '정신기관'을 마련하는 준비 과정에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감각적인 것을 다루는 최신 과학을 기본으로 자신의 사고 방법 전체를 연마한 사람만이 진정한 정신 탐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슈타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각적인 것에 관한 과학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정신과학이 시작된다."(10)
 
그래서 인지학적 의학에 관한 첫 저술인 <정신과학적 인식에 따른 의술 확장을 위한 기초>에서 슈타이너는 "우리는 기존 의학의 원리를 완전히 인정한다. ... 우리는 오늘날 인정된 과학적 방법으로 인간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에 다른 방법으로 발견한 확장된 앎을 더할 뿐이다."(4)라고 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한때 인간의 모든 인식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지만 현재 철학에 남아 있는 것은 추상적 관념의 총합뿐입니다. 슈타이너는 한때 철학이 영혼의 온기로 체험하는 인간의 문제였지만 오늘날에는 이성과 지성만 관심을 가지는 관념들뿐이어서 철학 안에서 실재를 느낄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우주론 역시 한때는 인간이 어떻게 우주적 세계의 한 부분인지를 보여주었으나(신체, 영혼, 정신으로서), 오늘날 자연과학적인 방법은 물질적 우주론만을 남겼다고 토로합니다. 
 
슈타이너는 현대 자연과학에 맞서는 사람이 아니고, 과학을 비난하는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했으면 합니다. 그가 발전시켜온 인지학이란 곧 정신과학이고, 정신과학은 자연과학의 확장임을 알아야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인지학의 현지화를 주장하며 동양사상과 인지학을 혼합하는 분들도 계신데, 가만히 듣다 보면 그분들의 이야기는 이미 인지학과는 무관한 개인적 철학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인지학의 관점에서 동양사상과 비교연구를 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오히려 장려될 수 있으나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인지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입니다. 인지학 관련 서적을 보면 슈타이너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철저하고 엄밀하게 접근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책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단지 독일어 번역이 어려워서라기보다 학문적으로 치열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연과학자들의 논문을 읽더라도 마찬가지로 무슨 말인지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양자역학에 관한 논문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계속해서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체에 해당하는 물질세계만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연구도 쉽지 않은데, 여기에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자아의 영역까지 관련지어 설명하는 슈타이너의 인지학은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초적인 자연과학에 대해 다시 차근차근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세계, 달리 말해 영적인 세계에 대해 허황된 길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부터 과학적 접근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과학의 역사에 대해 고대 그리스의 우주론부터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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