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인지학/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 (7)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 지금은 품절된 섬돌출판사의 에 수록된 이 강연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1915년 2월 2일 도르나흐에서 행한 것입니다. 조준영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이 강연에서 우리는 아기 탄생의 의미가 단지 지상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교육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므로 일독을 권합니다. 죽음과 새로운 탄생 사이에서의 삶의 반영으로서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 1915년 2월 2일 도르나흐에서의 강연 삶과 존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들이 단순하다는 명제에 기대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저런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 점에 대해 종종 주의를 환기시켰지요. 조화로운 우주―여기에 인간도 일부분 연관이 있습니다만―의 복잡..
그러면 이제 우리가 좋은 교육을 받은 인간으로 또는 교육을 받지 못한 인간으로 교육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로서 세상으로 내보내졌을 때 이 단계에서 반영되는 과정들은 어떤 것일까요? 그 시기가 되면 토성의 시기 이전에 있었던 과정들이 반영됩니다. 또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에 전혀 속해 있지 않은 과정들이 우리 내면에서 반영되지요. 이 과정들은 가시적인 세계의 일이 전혀 아니므로 우리 외부에서 우리 눈에 띄게 존재하는 별들 안에 그 상대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시점의 끝까지 체험하게 되는 것의 상대개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아직까지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 중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이 교육을 통한 우리의 체험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
정신과학에 의해 변조되거나 변형되어 나온 잡다한 사실들 가운데 이러한 것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즉 교사 또는 교육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 근본적으로 말해서 부모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영혼 안에 집적되어 있는 정신적 표상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훌륭한 교육자가 된다는 점, 이 점에 대한 인식의 도를 점점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좋은 교육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는 대부분의 일을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컨대 교사에게서는 다음 날 이것 혹은 저것을 다루는 데에서 가급적 좋은 교육학적 원칙들을 갖는 정도를 넘어서서, 다음과 같은 점이 엿보여야 합니다. 즉 내일 다룰 수업의 소재를 학교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자기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체험해 보는 면모가 중요합니다. 교사가 수..
그 다음으로 소년기와 소녀기 시절이 옵니다. 이 시기에도 교육은 여전히 지속되지만, 교육의 방식은 사실상 젖먹이 시기와는 다릅니다. 이 시기가 바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발전된 단계 내지 국면이지요. 이 단계는 인간이 자신을 자각하여 '나'라고 지칭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부터 본격적인 교육활동에서 벗어나도 좋은 시점에 이르는 시기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교육에서 벗어나는 시기에 당사자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삶 안으로 진입하며 삶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기는데, 이때가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삶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서 삶으로 나아가느냐가 갈리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또한 반영의 결과입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완전한 마야인데, 이 역시 또 다시 이전 단계에 ..
우리가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상이 하나 있고 그 대상이 저편에서 반영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투영상이고, 그래서 우리는 이 투영상에다 어떤 요소를 집어넣어야 합니다. 이때 우리가 투영상에 집어넣는 요소는 투영상이 투영상으로서 존재할 때보다 내적으로 더 견실하게 그 투영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실 인간이란 무릇 투영상의 존재로서 세상에 태어나며, 그러므로 견고하게 만드는 과정, 즉 이러한 반영의 관계를 현실에 실재하는 존재로 만드는 과정을 획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인 것입니다. 우리는 밖으로 발현하려고 하는 요소를 가급적 방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이제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하는 시기는 탄생과 함께 자의식을 펼치기 시작하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나'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시점(우리가 자주 입에 올리는 인간 삶의 중요한 시점) 사이의 시기입니다. 바로 이때를 일컬어 본래적인 의미의 아동기라고 부를 수 있지요. 우리가 보내게 되는 이 시기, 즉 첫 단계의 아동기―제 생각으로는 이 시기를 유아기라고 부르면 좋겠습니다―는 마찬가지로 정신의 영역으로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 한 과정의 반영입니다. 말문은 터지기 시작하지만 이것이 '나'라는 의식과 연관되지는 않은 채 옹알이가 시작되는 시기가 반영하는 실재의 과정은 탄생 이전의 과정에 대한 반영이며, 이 탄생 이전의 과정은 우주 저 멀리에까지 미쳐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차원에서는 태양과 행성계에 속한 모든 행성들이..
이렇게 해서 이 과정은 당연히 의미심장한 신비의 영역, 하나의 조화로운 우주사건의 반영이 되는 것입니다. 헌데 인간들은 종종 이 과정을 인류의 가치를 폄훼하는 사건의 영역으로 떨어뜨려 놓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점들이 더 있습니다. 몇 가지 지엽적인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넘어가지요. 다시금 지구상에 발을 들여놓을 시점이 다가온 사람의 내부에서는 자기가 그 몸을 빌려 지구에 들어갈 부모에 대한 표상이 영혼의 차원에서 형성됩니다. 그가 여러 부모의 쌍 중에서 유독 어떤 쌍에게 맡겨지는 연유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말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카르마(Karma, 우리말로 해석하면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갈마, 업, 업보 등으로 쓸 수 있으나 상용되는 의미와 동일하다고 볼 수 없어 발음..